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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26 [주간경향] [사회]풀뿌리 시민운동의 열매 ‘민중의 집’

ㆍ지역주민 문화·자치공동체…서울 마포 이어 중랑에 문열어

영화모임 B는 근 1년간 모임을 갖지 못했다. 비디오시장의 몰락 등 환경의 변화 탓도 있지만, 오프라인 참가자 10~15명으로는 엄두도 못낼 높은 장소 임대료 때문이기도 했다. 30·40대 직장인이 대부분인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시간은 주말. 주말 저녁 카페 등을 빌려 영상회 등을 여는 데 드는 비용은 최소 30만원 이상이다. 회원들이 비용을 갹출한다고 하더라도 2만원 이상 부담이 돌아간다. 모임에 대한 욕구는 있지만 비용 때문에 모일 수 없었던 이들에게 ‘민중의 집’과 같은 공간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자리잡고 있는 민중의 집. |정용인 기자

 


민중의 집? 팸플릿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삶을 서로 가꾸고 나눔으로써 지역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따뜻하게 바꾸기 위해 만든 주민들의 자치공간이자 공동체.’ 쉽게 말해 지역주민이 모여서 토론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함께 먹기도 하는 지역사회의 거점공간이다. 원래는 이탈리아나 스웨덴 등 유럽에 있는 사회운동의 모델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8년 11월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2년째 운영되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서울 마포에 있는 ‘민중의 집 1호’를 찾아가보았다. 민중의 집은 유동인구가 많은 시장통 가까이 자리잡고 있다. 1990년대 초반쯤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2층짜리 양옥집. 1층 출입문과 별도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1층 현관 위에 알록달록한 글씨로 ‘민중의 집’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었다. 담장은 없다. 거리에 인접한 마당엔 나무벤치가 놓여 있다. 시장을 보고 귀가하던 주부들이 잠시 앉아 쉬어가도 자연스레 보이는 모양새다.

월 1만원이상 370여 회원 회비 운영

기자가 방문한 시간은 오후 2시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헤이즐넛 향과 함께 80년대 팝송이 흘러나온다. 개구진 아이들이 책가방을 팽겨쳐 놓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다. 사전에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은 안성민 사무국장(34)이다. 그를 「Weekly경향」 지면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민사회운동의 대안 모색을 주제로 한 커버스토리 기사(「Weekly경향」 804호)에서 당시 창립 한 달이 된 민중의 집을 소개하며 그를 만났다.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모을 것인가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시민강좌를 열었는데 회원들의 호응이 거의 없었다면서. 벌써 2년이 지났다. 안 국장의 고민은 덜어졌을까.

“생각보다 빠르게 안착한 것 같아요. 회원 규모나 운영이 안정화되는 측면이나 지역사회에서의 인지도 측면이나….” 현재 1만원 이상 회비를 내는 회원은 370여명. 지역거주민이 전체 회원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안정이 됐다고 하지만 아직 빠듯하고 여전히 좌충우돌이다.

“회원들의 시간·재능을 나누거나 운영 참여 같은 걸 바탕으로 운영되는 풀뿌리단체로서는 경험이나 노하우가 쌓이는 것보다는 아직 ‘공백’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로 안착될 수 있었던 요인은 마포 지역의 특수성에 있다. 성미산 마을 등 지역의 풀뿌리 네트워크 등의 독특한 지역문화가 시행착오나 어설픔을 극복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현재 자체적으로 돌아가는 동아리는 3개다. 자전거마실 모임,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노래를 연습하는 합창소모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정치·문화 공부모임이 있다. 라틴아메리카 공부모임의 경우는 강좌로 개설되었던 것이 모임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강좌를 하시던 분과 수강생들이 친해졌고, 모임을 갖다가 관심사도 비슷하니 궁극적으로 공부모임을 만들어보자고 결의(?)된 경우입니다.” 짧으면 4강, 길면 6~7강에 이르는 시민강좌는 한 달에 2개 정도 굴러간다. 오전 시간에는 주로 전업주부들을 대상으로 학부모 강좌가 열리고, 저녁에는 직장인을 중심으로 인문사회·정치·경제·역사 강좌가 열린다. 현재 진행되는 강좌는 소비문제, 내집 마련이나 신용카드 사용 등을 돌아보는 ‘참경제 강좌’와 ‘페미니즘 강좌’다. 강좌는 대부분 회원들의 품앗이로 진행한다. “물론 어떤 주제로 강의를 진행할 때 좀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이거나 인지도가 있는 분이면 좋겠지요. 그런 욕심을 조금 버리면 지역 자원에서 찾고 여러 부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설령 외부강사를 초빙하는 경우라도 그런 취지나 원칙을 말씀드리면 대부분 이해를 해주시는 편이고요.”

민중의 집에서 진행되는 크고 작은 행사 중 ‘화요밥상’ 행사는 가장 중요하다. 화요일 저녁, 회원들이 순번을 정해 시장에서 장보고 같이 밥을 해먹는 행사다. “새로운 회원들이 기존 회원들과 만나 친해지는 공간이고, 또 그 안에서 민중의 집 운영과 관련된 아이디어나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에요.”

어린이·학부모·직장인 알짜 강좌

지난 2월 민중의 집 정기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이 한해 살림 계획에 대해 듣고 있다. | 민중의 집 제공

민중의 집은 공간에 대한 욕구를 가진 개인이나 단체에게 열려 있다. 앞에서 언급한 B모임의 경우처럼 딱히 지역적 연고가 없어도 모임 장소로 사용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민중의 집은 공간입니다.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면서 자신들의 네트워크·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민중의 집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역사회의 공공재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거고요.” 지난 2009년의 경우 70여개 개인 및 모임·단체들이 이곳에서 160~170회 정도 행사를 열었다. 민중의 집은 3시간을 사용했을 때 강의실의 경우 2만원, 방은 1만원을 사용료의 ‘상한선’으로 잡고 있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곳엔 흔쾌히 무료로 사용하도록 허락하기도 한다. 지난 2년, 민중의 집은 지역사회에 어떤 의미였을까. “민중의 집은 실제로 누구의 집이었을까를 놓고 보면 ‘세입자들’의 집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입자는 한 지역에 정주할 수 없으므로 주민으로서 정체성을 못 갖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특히 망원동의 경우 다세대주택이 밀집하고 지역사회를 채우는 비율 중 세입자의 수가 월등히 높은데, 정주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자기 권리를 못 찾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분들이 민중의 집에 와서 지역사회에 대한 정보도 얻고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 셈이지요.”

마포에 이어 민중의 집 2호가 중랑구에 지난 10월 29일 문을 열었다. 풀뿌리 시민사회의 거점에 대한 욕구에 비해 확산은 더딘 편이다. 안 국장은 “근본적으로 기형적으로 부풀려진 한국사회의 부동산 임대료라는 ‘구조적 현실’과 함께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사람과 역량의 제한된 자원 배치로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중랑 민중의 집 ‘사람과 공간’의 박수영 운영위원은 “일단 ‘이런 것을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도 해보면 좋겠다’에서 시작했지만 앞으로 공간을 어떤 내용으로 채워나갈 것인가가 숙제”라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람들의 이동성이 높고 중앙집권적 사회이기 때문에 풀뿌리 지역사회 조직이 토착화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유럽사회와는 다른 한국사회의 특징”이라며 “유럽식의 모델은 아니더라도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새로운 형태의 공간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일반주민 참여와 배타적이지 않으면서도 결속력을 지닌 지역사회 조직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터뷰를 마치자 내내 기웃거렸던 일단의 청소년들이 들어와 책상을 날랐다. 마을공부방 ‘토끼똥’ 회원들이 동화책 만들기 워크숍을 열기 위해서다. 기자의 인터뷰가 모임을 방해한 셈이다. 몇 년 후 이들이 사회 초년생이 되었을 때 ‘민중의 집’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까. 자못 궁금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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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들꽃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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